[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가족과는 정치를 논해선 안된다" "극좌·극우 지지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나와 정치적 견해가 엇갈리는 가족, 관심사가 다른 직장 동료에서 기후변화에 각자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 극단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대화는 가능한가.신간 '동료에게 말 걸기'는 바로 옆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모두 동등하게 존재하는 세계에서 '동료'가 되어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다.한국 사회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세대 간 격차가 벌어졌고,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 여전히 권위주의적 문화가 남아 있다. 같은 경험을 두고 완전히 다르게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언론과 학계에서 '극우' 분석이 유행하는 가운데,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난 80년대생 남성인 저자 박동수는 'TK(대구·경북)'를 타자화하는 담론에 개입한다. 개입의 방식은 고향 사람들의 선택을 두둔하거나, 비판을 해도 당사자가 하겠다는 식이 아니다. 상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이해를 위해 '나'의 언어를 바꾸자는 제안이다."돌아가신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정치가 화제로 오르기만 하면 분위기는 금세 싸늘해졌다. 어느 날인가 말싸움처럼 대화가 끝났을 때 나는 홧김에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조용히 반문했다. '그럼, 문맹인 내 친구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아버지는 글을 읽지 못하는 친구의 삶이 그 자체로 존엄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말이 통하는 사람과 통하지 않는 사람을 미리 갈라놓고 있었다. (중략) 마치 극우 지지자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섣불리 단정 짓는 것처럼. 그러나 이런 태도는 애초에 '대화 불가능한 절대 타자'를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 그것은 말 걸기를 시작부터 가로막는 오류다." (75쪽, 3장 '말이 어긋나는 시대에 말 걸기' 중 )이 책은 21세기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편집자(저자)가 라투르의 철학을 경험적으로 풀어낸 책이기도 하다. 브뤼노 라투르는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존재양식들'을 탐구한다. 과학, 정치, 법, 종교, 경제와 같은 인간 활동의 영역들이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근대 철학이 합리성과 비합리성, 자연과 사회, 물질과 정신, 주체와 객체로 이분화해 파악한 세계는 더는 없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예전의 이분법적 사고로 되돌아가는 우리에게는 존재론의 재검토가 절실하다.제사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인공지능(AI)는 인간을 돕는가, 착취하는가? 스피박의 내한은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축산업자와 생태주의자는 연합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는 답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각자 경험의 나열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오직 존재론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존재의 양식들(modes)을 알아보는 작업이 앞서야 한다. 이 책에서는 21세기의 존재론을 배우고 연습할 수 있다."하나의 연습으로 극우 세력 지지자에 대해 '그들도 우리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말고, '우리도 그들처럼 감정으로 정치를 판단하고 있다. 단지 깊은 이야기가 다를 뿐이다.'라고 말해 보자.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사람에 대해 '그들도 우리처럼 과학을 신뢰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처럼 불안하다. 우리는 기후위기가 두렵고, 그들은 생계가 두렵다.'라고 말해 보자. 이 연습은 상대를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협상의 주체로, 적이 아니라 잠재적 동료로 보게 만든다. (중략) 다른 존재양식, 다른 존재론과 동등한 자리에서 만나려면 '우리도 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195쪽, 결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방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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